04: 앞으로 10개월이 중요합니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각자의 맥락에 따라 구성은 다르겠지만 나의 피드는 플랫폼 구분 없이 비슷하다.

“코딩 에이전트 완벽 가이드”
“AI 시대에서 이런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앞으로 0년간 이런 일들이 일어날겁니다.”

같은. 제목만 봐도 읽지 않으면 나만 크게 뒤쳐지게 될 것 같은 어그로를 끄는 글들이다. 제목을 어쩜 그렇게들 잘 뽑는지 Something Big Is Happening 이라니. “뭔가 큰게 온다” 는데 어떻게 안 읽을 수가 있을까? 어쩐지 권위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무서운 얘기를 던지는 이런 글을 만나면 두렵고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게 이상하다. (이 글을 가져온 이유는 그저 지금껏 본 임팩트 아티클 중 가장 최근에 본 글이어서다.)

이런 글들이 조급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이유는 단지 차분하고 권위있어 보이는 문장 (필히 AI가 도와줬음이 분명한) 이나 글쓴이의 팔로워 수, 글에 대한 반응 수 같은 것들 때문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 역시 하고 있던 생각을 잘 정리해 옮겨놓은 것 같다는 느낌, 내 머릿속을 뱅뱅 돌던 생각들을 구조화된 문장과 훌륭한 지침들로 정리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공감과 함께 내가 이렇게 권위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은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한동안 그런 자기 위안에 빠져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앞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의 사고가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피드에 잘 동기화 되어있을 뿐이라는 것을. 최근 읽은 책에서 던진 화두가 떠오른다.

“AI를 인간답게 만들것인가. 우리가 AI를 닮아갈 것인가.” 새로운 질서 (헨리 키신저, 에릭 슈미트 저)

그렇게 눈에 띄는 컨텐츠를 만나면 불안한 만큼 각 잡고 앉아 차분히 읽고 소화해야 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보통 나중에 읽을 수 있도록 메모 앱에 넣어두거나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AI에게 던져 주고 요약을 지시한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그런 컨텐츠가 너무 많은 탓이다.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이런 컨텐츠에 주목하고 저장하고 공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며 어떻게든 답을 찾아보려는 것. AI 덕에 늘어난 생산력 만큼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 뻔한데 어떻게 해야 그 좁아진 길 위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그간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해 왔던 길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원래부터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하고, AI가 가장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는 기술 커뮤니티에 있다보니 사람들의 혼란과 불안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권위있는 누군가의 말들, 나보다 더 빨리 미래를 본 것 같은 현인들의 얘기 속에도 나를 위한 답은 없다. 현상을 요약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며 내가 해야 할 행동 지침을 제안하는 글들은 재밌게도 AI가 잘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이런 글들은 모호한 현상을 구조화하고 명확해 보이게 만들어 내가 마치 약간은 답에 가까워진 것 같다는 착각에 들게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컨텐츠를 찾고 소비하게 되는 건 결국 내가 필요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내가 할 행동과 결정이고, 그 결정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이 주식만 사 모으세요 라는 제목의 유명 금융인들의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종목을 주지 않는다. - S&P500 제외 😂)

AI의 현시점 역량과 믿기지 않는 발전 속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나만의 아젠다 (아이디어/목적의식 뭐든) 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낀다. 솔루션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말도 안 되게 작아졌고, 아직 아쉬워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도 시간 문제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커리어”의 대부분을 남의 준 문제를 잘 풀어주는 역할을 해왔고 그것이 나의 강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서툴더라도 답을 찾는 일은 미뤄두고 나의 문제를 정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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