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주 1회, 서빙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저녁 시간에 동네에 있는 우동가게의 일을 돕고 있다. 기술이 없으니 주방 일을 도울 수는 없고 주문을 받고 나온 음식을 내어주고 손님들이 먹고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이다. 홀 서빙 알바, 보통 또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시기에 회사에서 일을 일찍 시작했기에 어릴 적에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인데 이제 막 40대가 된 이 시점에 하고 있다.

일본 우동보다 얇은 면에 유부와 쑥갓이 잔뜩 들어가는 한국식 우동에 돈까스, 제육덮밥이라는 기사식당 스타일의 메뉴를 운영하는 이 우동가게는 사실 작년 10월 말 같이 사는 친구가 오픈한 곳이다. 나와 대략 25년지기인 이 친구는 본인의 커리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항공 승무원으로 보냈다. 이후 대학로에서 와인바를 운영했고, 호텔/리조트를 거쳐 소위 힙한 것 잘 만들어내는 F&B 회사들에서 음식점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해왔다. SNS를 전혀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일, 유행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는 매일 달라지는 트렌드에 일년에도 컨셉을 몇번이나 바꿔야 하는 업계에서 그래도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꾸역꾸역 일해왔지만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 어릴적 멋모르고 해봤던 와인바 창업 이후로 다시는 자영업을 하지 않는다 선언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한번씩 본인의 가게 얘기를 꺼내게 됐다. 화려한 마케팅으로 반짝 사람들의 눈을 빼앗지만 정작 지속될만한 컨텐츠가 없는 곳 보다는 맛있는 한끼를, 부담없는 가격에, 꾸준히 먹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작년 같은 시기에 쉬는 시간을 보낸 덕분에 나랑 많이 놀아준 친구가 시작하는 사업에 나는 당연히 고관여자가 됐다. 작은 가게 하나를 여는 일이 이렇게까지 많은 선택과 판단을 요구하는 일인 줄 몰랐다. 친구의 전 직장 동료인 셰프님과 메뉴를 개발하는데 테스트(시식)를 돕기 위해 참여한 것은 개중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가게를 열때 가장 중요한 상권 분석과 위치 선정은, 상권을 분석했다고 해서 알맞은 위치의 매물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맞춰놓은 원가율 안에서 냉동이 아닌 냉장 돈등심을 구하기 위해 스쿠터를 타고 코스트코와 마장동 육가공 공장을 돌아다녔다. 제육덮밥에 꼭 삼겹살을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친구 덕에 국내에서 유통되는 삼겹살의 돼지 품종들과 가격대를 알게됐다. 잡내 없는 냉장 삼겹살을 찾기 위해 다양한 삼겹살을 벌크로 받아 테스트하고 남은 것은 우리집 냉장고에 들어가 강아지들과 함께 처리했다. ㅎㅎ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모든 과정은 친구가 진행했지만 그간 회사에서 수없이 많은 인원을 채용했던 경험으로 전해준 나의 노하우들이 여기서는 전혀 노하우가 아니었다. 출근하기로 한 날 못 하겠다며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고, 면접 시간 30분 전에 불참을 통보하는 일은 그나마 통보를 했다는 점에서 감사한 일이었다.

그저 맛있는 메뉴를 선택하면 되는 줄 알았던 메뉴 개발은 주방의 동선과 기물들의 치밀한 설계가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사전에 계획을 소홀히 했다가는 비싼 주방 기물들을 교체해야 하는 리스크가 된다. 그저 휴식 시간 정도로만 생각했던 매장의 브레이크 타임도 치열한 인건비 최적화 과정 끝 불가피한 일 임을 알게 됐다.

다시 나의 알바 얘기로 돌아오자. 어릴 적 알바를 해본 적 없다고 했지만 사실 이틀 정도의 경험이 있다. 당시 친구의 부모님이 횟집을 운영하셨는데 나의 부모님과도 친하셨던 그 분들이 수능이 끝난 겨울 방학에 우리를 알바로 고용해 주셨다. (부모님 찬스로 넉넉한 시급도 책정해주셨다.) 그곳은 한 층에 대여섯개 룸과 커다란 홀이 있는 대형 횟집이었는데 신발을 벗고 좌식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산만하고 덜렁대는 성격이었던 나와 친구는 첫날부터 실수를 연발했고 양말만 신은채로 홀을 종일 걸어다니다보니 발이 너무 아파 룸 안에 숨어 쉬었다. 결국 도움이 안 된다는 직원 분들의 컴플레인에 이틀만에 알바에서 짤리게 됐다.

내가 일해온 환경은 시간 대비 최대의 성과, 매달 n배의 성장, J커브 같은 얘기들을 교과서처럼 여겼다. 스케일업 하지 못하는 사업은 지속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성장하고 확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기에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효율성을 항상 생각하며 일했다.

가게에서의 일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15평 남짓의 매장에서 만들 수 있는 매출의 한계는 명확하다. 매일 영업이 끝나면 식기세척기를 나온 따뜻한 그릇들을 하나하나 가제수건으로 닦아 정리하고 매장을 쓸고 락스로 화장실을 청소한다. 이런 일들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줄어들 수 있는 시간은 10% 안팎이니 여기서의 노력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고 확장 가능하지도 않다. 그간의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꽤 비생산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친구를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섰음에도 지루하고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그렇지가 않다. 어떤 성과나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걸까? 나를 (설비)이사님이라고 부르며 시도때도 없이 밥 먹으러 올 것을 종용하는 주방 실장님의 음식은 진짜 집밥처럼 맛이 있다. 직접 손으로 그릇들을 나르고 테이블을 닦는 동안은 이상하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지 않을 때 드는 불안이나 초조함이 사라진다. 막연히 걱정했던 진상 손님들은 없고, 동네 장사여서인지 벌써 단골이 되어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는 다정한 사람들을 대하며 얻게 되는 위안도 있다.

완벽하게 동작하는 QR 주문을 도입했지만 매번 어설프게 만든 한장짜리 메뉴판을 손님들에 가져다주는 친구에게 공감이 간다. 막상 가게에서 일을 해보기 전에는 비효율적이라 반대했던 일이었는데도.




동네 우동가게가 궁금하신 분들은 joyeon@gmail.com 으로 문의해주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