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다시 다시 시작 : 허송세월

아무 일 없이 잔잔하던 일상에 12월 30일이라는 날짜가 예고도 없이 내리꽂혔다.

2025년 초, 구정을 넘기기 전에는 어떻게든 작년 회고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월 어드메에 멋쩍은 새해 인사만 남겼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어느새 또 1년이 다 지나버렸다.

부랴부랴 올 한 해를 돌아본다. 막상 회고를 쓰려니 쓸 것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 몸에 밴, 일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자면 나는 올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상반기에 했던 몇가지 시도가 불발된 이후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나의 일을 찾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은 탓도 있다.

2005년, 개발자로 일을 시작해 10년간 개인의 성장에 몰입했다. 2015년, 영국으로 나가 스타트업 여정을 시작한 이래 또 10년간 해외와 국내를 오가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 제품, 조직을 고민하며 보내왔다. 그 시간들과 비교하면 많이 비어있고 여유로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록할 내용도 의미도 없는 한해였나?

그러다 문득 이달 초, 비슷한 심정으로 트위터(현 X)에 남긴 트윗이 떠올랐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을 다른 사람들은 허송세월이라 부르지 않을까.

나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어도 되는 걸까?

몸에 밴 익숙한 태도는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다음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 어때? 라는 마음도 존재한다. 플랫폼과 테크 산업이 끝을 모르고 성장하던(하는 것 같았던), 내가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분명해보였던 지난 10여년과 달리 시절도 나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약간은 충동적으로 이 낯선 허송세월을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결심했다.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발적으로도, 강제로도 아닌 절반쯤 자발적인 FIRE 상태가 되었다. 그 계기로 일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고, 이 상태와 생각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이 나에게도,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게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올 한해, 할 일과 정해진 목표없이 지나왔지만 내년에는 적어도 기록을 꾸준히 해보자는 할 일이 생겼다. 얼마나 자주, 오래 쓸지는 모르겠지만(ㅎㅎ) 이 블로그의 기록이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사유의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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